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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

"돌아가셨는데 살아오셨어요! 예???"_박유리 간사

지난 가을 나눔의집에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났습니다.


1년 전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이** 할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로 한밤중에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지요. 저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전화를 받아야 했지만, 순간 당황스러워 몇 번이나 신호음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습니다.


보이스피싱인가? 결국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벌써 1년 전에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었던 어르신의 목소리가 생생히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박 선생~~ 나 이제 돌아왔어. 먹거리 다시 받으러 갈까 하는데 괜찮겠지?" 무슨 공포 영화도 아니고 돌아가신 분이 전화로 찾아오겠다고 하니 어찌 당황스럽고 무섭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일단은 '그러겠다', '오시면 말씀 나누시자'라고 하곤 종료 버튼을 눌렀습니다. 다리 힘이 쭉 빠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오신다는 분이 약속한 날짜에도 오지 않고 2주 동안 오신다는 전화만 계속하시는 거예요. 정말 2주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사무실에선 모두 온갖 상상의 나래를 다 폈습니다. ㅠㅠ 


2017년 여름 매주 두 차례 나눔의집에 반찬을 받으러 오시던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오시지 않게 되었어요. 궁금함에 전화도 하고 집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만나 뵐 수도 없었어요. 걱정스러움에 어떻게 연락이 닿지 않을까 싶어 쪽지를 남겨 두었는데 며칠 뒤 할아버지의 조카라는 분이 나눔의집을 찾아오셔서 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주셨지요.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지방에 계신 할아버지 누님댁에 요양가게 됐다며 더는 반찬을 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어요.


소외 노인분들의 건강이야 하루가 다르다 보니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 소식도 사실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연세가 그리 많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 못한 만큼 건강이 나빠 보이시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연락조차 안 될 만큼 건강이 악화 되셨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지요. 


어찌 되었건 조카분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알려 달라 하곤 조카분의 연락처를 받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조카분에게 할아버지는 어떠신지 물어보곤 했지요.


그러다 지난 2017년 가을 조카분에게 연락드렸더니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이제 연락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돌아가셨을 때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냐고 반문했지만, 경황이 없어 못 알려드렸다며 전화를 끊어 버리셨어요.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 좀 더 자세히 물어 볼 걸 하는 마음에 한동안 기분이 우울했습니다.


그런데 18년 가을, 할아버지가 연락을 주신 거에요. 전화가 오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나눔의집을 찾아오셨어요. 다행히 건강도 생각처럼 나빠 보이지 않으셨어요. 조카분이 어떤 마음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말씀하셨는지 알 길이 없고 할아버지께서도 "오해가 있었다"고만 말씀하실 뿐 그 일에 대해서는 더는 말 하지 말라 하시니 차마 더 물어볼 수 없었지만, 다시 뵐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반갑고 기뻤습니다. 


이** 할아버지처럼 아예 돌아가셨다 말하는 친지분은 지금껏 없었지만 사실 나눔의집을 오시는 어르신들 중 상당수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분들에 의해 어느 요양원으로 모셔지고 연락이 두절 되는 경우가 의외로 종종 있습니다. 가족들은 나눔의집이 연락하고 찾아가는걸 꺼리는 것 같습니다. 연락처도 요양병원 주소도 알려주지 않으시고 다만 잘 계신다고만 말씀하시죠. 그러다 몇몇 분들은 돌아가시면 연락이라도 주셔서 장례식장에서나 겨우 영정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곤 합니다. 저희가 어떤 불이익을 주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어르신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려는 것뿐이었는데... 왜 연락처를 알려주시지 않을까 속상하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새삼 어르신들뿐 아니라 가족들에 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도 나눔의집이 쏟아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혼자 지내시는 이** 할아버지는 몸도 마음도 힘드시지만 늘 웃으면서 특유의 말투로 "박 선생~~"하고 부르시며 나눔의집에 찾아오세요. 한동안 듣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박 선생~~" 소리를 듣게 되어 고맙고 반갑습니다. 할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