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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

관악청소년 자활지원관 청소년 꿈나눔 강사 이야기(한겨레신문)

한동네 사는 고교생-초중학생, 
‘대안 형제’로 손잡아요

지난 18일 서울 당곡중에서 진행한 ‘청소년 꿈나눔 프로젝트’에서 경호원을 꿈꾸는 박민지양이 강연 도중 호신술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당곡중에서 진행한 ‘청소년 꿈나눔 프로젝트’에서 경호원을 꿈꾸는 박민지양이 강연 도중 호신술을 선보이고 있다.
마을서 나눔 펼치는 청소년들
“초등학교 때 말썽을 많이 피워서 매일 등하교 때마다 교장실에 들러 출석체크를 해야 했다. 후배를 괴롭혀서 졸업식 날 경찰서에 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서울 남강고 3학년 차병근군이 자신의 ‘흑역사’를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맞은편에 앉은 중학생 후배들은 차군의 사연을 듣고 신기해했다. 차군은 중학교 때 담배를 피우다 농구부 선생님한테 걸려 (징계를 안 받는 대신) 농구를 시작했지만 체력 조건 때문에 포기했다. 그러다 고2 때 우연히 진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역 라디오방송인 ‘관악에프엠(FM)’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 “허드렛일을 하다 방송에 출연했는데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성우·경호원 등 꿈꾸는 고교생
경험에 기초한 ‘꿈찾기’ 과정 등
지역내 중학생한테 강의로 소개

‘놀토’란 이름의 공부방 열어
무료 과외 하는 고교 선배들도 있어
지역 기반한 선후배 멘토 프로그램
아이들 돌보는 ‘안전장치’ 구실 하기도

그는 현재 라디오 엔지니어 일을 배우면서 성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라디오 진행자다. “얼마 전 한국방송예술진흥원 성우과에 합격했다. 대학 안 가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바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다.”

지난 18일.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당곡중 1학년 교실. 관악청소년자활지원관이 진행한 ‘꿈나눔 프로젝트’ 현장이다. 같은 지역에 사는 고교생들이 후배들을 찾아가 사람책 형식으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 내용이다. 유명인이거나 공부 잘하고 성공한 학생 멘토가 아닌 동네 형, 누나가 청소년들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게 목적이다.

차군 외에도 경호원·바리스타·가수·사회복지사 등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자신이 꿈을 갖게 된 계기와 현재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박민지(구암고 3)양은 로드FC 격투기 선수를 준비하다 발목을 다쳐 꿈을 접어야만 했다. 주짓수·복싱·이종격투기 등을 배웠던 박양은 고등학교 때 단기 인턴십으로 경호업체에서 5일간 일하게 됐다. “방송국 대기실과 공연 무대로 가는 중간 통로에서 경호를 섰는데 적성에도 맞고 재미있었다. 그 경험을 통해 경호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경호원이라는 직업을 알려주기 위해 자료를 꼼꼼히 준비해 왔다. 단순 신변보호뿐 아니라 경호 목적이나 장소에 따라 시설경비·호송경비·기계경비·특수경비 등으로 나뉜다는 점, 경호원이 사용하는 전기충격기·3단봉·공기총 등 호신용품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간단한 호신술도 직접 보여줬다.

학생들은 막연히 “경호를 서면 연예인도 만나고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박양은 “경호는 체력적으로 힘들고 사명감과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라며 “콘서트장 경호를 섰는데 한 달 전부터 지리를 파악하고 어떻게 배치할지 결정했다. 당일에도 공연 시작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아침 7시부터 바리케이드를 치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유혜련양은 “경호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도 알고 일이 힘들지만 보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호원이 꿈인 만큼 체력관리를 위해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했다. 강의를 진행한 학생들은 “같은 동네에서 자란 후배들이라 더 친근했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만나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꿈을 키워나가고 싶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요즘 청소년의 경우 자신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자기 혼자만 알고 남과 나누는 데 인색하다. 대입이 코앞에 닥친 고등학생들은 자기 공부하느라 바빠서 친구에게 문제를 가르쳐주거나 자기 노트를 빌려주는 것도 꺼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운데 동네 초등학생들에게 ‘무료 과외’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있다. ‘놀토’는 지역 내 청소년휴카페에서 만나 알게 된 청소년들이 뜻을 모아 만든 학습 봉사 모임이다. 각자 잘하는 교과목을 맡아 매주 토요일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다.

학생들은 아이들과 함께 문제집을 골라 사오거나 이비에스(EBS) 기출문제를 출력해 교재로 사용한다. ‘무료 과외’지만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윤우성(남강고 2)군은 “원래 봉사에 관심이 많았고 예전에 나도 구청을 통해 학습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받았던 혜택을 다른 이에게도 나눠주고 싶었다”고 했다.

학생이라 전문성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비슷한 또래들이 자주 쓰는 은어나 문화를 잘 알아서 아이들과 소통이 잘된다. 이들은 단순히 공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상담도 해주고 가끔 음식도 함께 만들어 먹는다. 가깝게 자주 만나면서 ‘대안 형제’가 된 셈이다.

“한 여자아이가 어릴 때 언어장애가 있어서 3, 4년 동안 치료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도 적었는데 어떻게 하면 애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물었다.” 윤군의 말이다. 그는 “꺼내기 힘든 이야기였을 텐데 그동안 지내면서 편하고 친근감을 느껴 전화했던 거 같다”며 “애들이 뜬금없이 전화해서 왜 했냐고 하면 모르겠다고, 그냥 했다고 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며 웃었다.

최지우(홍익디자인고 2)양은 “교사가 꿈이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알려준 내용을 다음 시간에 기억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놀토는 관악사회복지에서 10년 전부터 운영해온 햇살학교 모임 가운데 하나다. 모임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꾸리고 기관에서는 활동에 필요한 재료비나 교통비 등을 지원해준다. 놀토 외에도 아이들과 놀아주는 ‘햇살’, 동네 어른들께 네일아트와 손마사지 등을 해주는 모임이 있다. 가정 형편상 주말에도 일을 해서 제대로 아이를 돌보기 힘든 부모들이 놀토와 햇살에 아이를 보낸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활동 전에 항상 아이들을 직접 집에 데리러 가고 활동이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준다.

햇살에서 활동 중인 강석(당곡고 2)군은 “햇살에 오는 애들은 대부분 놀토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동생이다. 점토로 만들기를 하거나 종이접기를 하고 놀이터나 공원에서 뛰논다. 일방적으로 주제를 정하기보다 그때그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함께 한다”고 했다.

관악사회복지 조성호 활동가는 “매주 토요일에 나와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봉사시간이 필요해서 등 학생들의 시작 동기는 다를지라도 각자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는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아이나 어른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거 자체가 ‘안전장치’ 구실을 한다. 청소년들이 동생들을 챙기고 아이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어른들도 ‘우리 아이’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줄 수 있다.”

놀토 모임에 직접 참여하고 싶은 청소년이나 자신의 아이를 햇살학교에 보내고 싶은 사람은 고래카페로 전화(02-867-8732)하면 된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