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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

봉천동나눔의집 '우렁각시?'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남몰래 살짝 나와서 맛난 밥상을 차려놓고 사라지는 처녀의 이야기. 모두 알고 계실 거에요. ‘우렁각시이야기지요.

 

작년 겨울부터 봉천동나눔의집 마당 평상 위에 짬짬이 달걀이며 장, 반찬 등을 놓아두고 가는 분이 생겼어요. 처음엔 우리 냉장고에서 꺼내 넣고 넣어두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죠.

 

듬성듬성 다 채우지 못한 계란 한 판을 누가 부러 사 놓고 갔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계란이 들어있는 판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깨져 흘러내린 흰자와 노른자 자국과 껍질이 달라 붙어 있는 흔적도 있어서 들고 가다 몇 알을 깨먹고 잠시 놓아뒀다 잊고 안 가져간 동네 주민분의 것으로 생각했지요.

 

반찬 나누시는 어르신 중에 혹 놓고 가신 건 아닌가 물어 봤지만, 저희와 함께하는 어르신 중엔 없었어요


^^;; 상할 때 까지 놔둘 수는 없어, 그룹 홈 아이들의 차지가 됐습니다. 그렇게 또 몇 날이 지나고 이런 일이 반복되자 사무국 내부에선 기부 물품임을 분명히 알수 있었고 우렁각시라는 이름으로 이 익명의 기부자를 불렀지요.

 

추위가 한참인 올해 초에 이 익명의 기부자 분과 드디어 마주쳤습니다.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우렁이 속에 숨었다 나오는 각시는 아니었어요. 대신 트럭 속에서 중년?의 남성이 나오셨어요.




 

최인규 선생님. 식자재 배송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새벽 3시쯤 일어나서 식당에 식자재를 넘겨주고 오후 4시쯤 집으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나눔과 관련한 일에 관심도 많으신 터라, 배송 중에 깨져 납품이 어려운 달걀이나 반찬 등을 버릴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분들과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저희 나눔의 집에을 찾게 됐다고 합니다.

 

복지관도 푸드뱅크 같은 먹거리 기관도 있지만 집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하고 저희 나눔의집이 가장 필요한 곳처럼 보였다고 하네요. 좀 없어 보이긴하죠 ^^;;

 

요즘은 슬쩍 말 없이 가시지 않고 사무실에 들러 차도 마시고 이런저런 삶 속 이야기도 나누고 가십니다. 분명히 최... 라는 성함도 밝혔지만 저희는 여전히 우렁이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뭐 본인 앞에서는 절..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요.

 

어디서 온 것일까? 어떤 사람일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비함은 사라졌지만, 더 아름다운 일상을 공유할 수 있어 저희는 더 감사합니다.

 

우렁이 아저씨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