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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나눔의집 소식

우리들의 나름 행복한 시간

매미가 열심히 울어대던 수요일 오후였습니다.

전화가 한 통 걸려와 반갑게 받으려는 순간 저장되어있는 인물과는 다른 목소리가 나와 무슨 일이지 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채웠습니다. 그 짧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나눔의집 선생님이 맞나 확인을 하고 경찰서임을 알려주시면서 그런데 도대체 복돌이가 누구예요? 물어보시더군요. 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라고 하니 ~ 손자가 아니고 개예요? 손자인줄 알았네.. , ...” ...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을 끊고 할머니 왜 거기 계시죠?”하고 물으니 그제 서야 어르신이 길을 잃어 모시고 와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자녀분들이 연락이 되질 않아 저에게 전화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금방 모시러 가겠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할머니를 나눔의집으로 모셔왔습니다.

 

사실, 할머니는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아서 나눔의집 이사 전부터 오지 못하셨습니다.

치매증상이 급속도로 나빠져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방문하여 할머니를 돌봐주고 계시는 중이라 요즘은 밖으로 잘 나오질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필 수요일인 오늘, 나눔의집에 오는 날인 것을 오래전부터 기억하고, 몸에 밴 습관 덕인지 가야한다고 나서다 길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이사를 하고 처음 나눔의집에 오시는 길이라 한번 보고 가시는 것이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깔끔하게 잘 정리 했다고 칭찬해 주시며 나눔의집이 좋다고, 너무 좋다고 연신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다른 어르신들과 안부도 묻고 오랜만에 먹거리 나눔 하는 것도 가지고 가시고 즐거워하시는 표정이었지만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나눔의집이 이사를 하고 어르신들은 신이 나신 것 같습니다. 올 때마다 깨끗하게 잘 했다고 늘 칭찬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2층에 있어 어르신들이 이용하시기에 아주 편한 구조는 아니지만 전보다 좋은 환경이 어르신들의 기분을 좋게 해 드렸나봅니다. 이전이었으면 벌써 싸움도 많이 하셨을 텐데 요즘은 그런 것도 안보이고.... 큰소리도 나고 그래야 우리 나눔의집 어르신들인데... 요즘은 너무 평화로운 상태라 싸움 말리는 재미가 하나도 없네요...

신부님은 이사하고 어르신들이 싸우지 않는 것은 환경이 깨끗해져서 싸움이 안 나는 것이라 긍정적로 해석하셨지만, 어르신들의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이기도 해 마음이 씁쓸합니다.

 

자유로운 영혼 형 할아버지는 먹거리 기다리는 시간동안 믹스커피를 6~7잔을 드시느라 정수기를 괴롭히고 계시고, 잔소리꾼 황 할머니는 여전히 형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시면서 먹거리 나눔을 도와주시고 계시고, 우리의 화가 윤 할머니도 인자하게 웃으시면서 형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시고 계시고, 인자하신 이 할머니는 늘 그렇듯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고 계십니다. 골목대장 유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셔서 두세 번 걸러 한 번 오시고, 막내 정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오늘도 잘 들어주시고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어르신들과 함께 먹거리 나눔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건강히 오래오래 나눔의집에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유리(가정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