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글날은 아주 기억에 남을 날 일듯합니다.
11월에 마무리해야 할 그림책 작업을 위해 쉬는 날이지만 한글날에 모두 모였습니다.
약속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우리 최할머니께선 도통 소식이 없어 의청(의료청년봉사단) 학생들과 할머니를 모시러 나섰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댁에 계시지도 않고 동네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지요. 보통 약속을 하면 항상 먼저 와 계시는 할머니인데 요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잠시 주춤하는 단계가 온 터라 이 시간을 피해 도망 다니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길 20여분.... 나눔의집 저 언덕 아래에서 할머니가 올라오고 계시는 게 보였습니다. 학생들과 할머니께 가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집도, 나눔의집 방향도 아닌 곳으로 가시는 게 아닙니까... 아.... 진짜 도망 다니시는 건가.....
그건 정말 곤란한 일이라, 얼른 할머니를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왜인지 먼저 내려간 학생들이 할머니께 다가가질 못하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뭐지... 이 상황은...?!
바로 할머니 손에 비둘기가 들려있었습니다!! 새를 무서워하는 학생들이 할머니께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던 거였지요. 할머니는 “외로워서 이거 가져가서 키울 거야”를 주장하시면서 집으로 향하셨고 저희는 말리기 바빴습니다. 목에다 줄을 채워서 방에서 키우시겠다는데 말릴 방도가 없었지요. 충격 이었습니다!!
“바보 같은 비둘기가 졸고 있어서 잡았어!”하면서 천진하게 웃는 할머니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할머니께 죄송하지만, 그림을 그리러 오신 사이에 학생들이 댁에 가서 청소를 하고 비둘기를 놓아주고 돌아왔습니다.
한숨 돌릴 쯤, 나눔의집 아래쪽에 사시는 형할아버지께서 쉬는 날인데 사람이 많이 모여 있으니 궁금하셨는지 갑자기 오셔서 가실 생각을 안 하시는 겁니다. 오늘따라 또 기분이 좋으신지 가방에서 피리를 꺼내시더니 신나게 연주를 시작하셨습니다. 할머니들은 시끄럽다고 소리치시고, 이 광경을 처음 본 학생들은 당황하고, 선생님들은 어르신을 말리느라...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습니다. 형할아버지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계시고, 마이웨이로 살아가시는 분이라 기분이 좋으시면 저리 피리를 부시는 것으로 자기표현을 하시는 분이시지요. 아무리 소리를 쳐도 연주를 끝내지 않아 결국 간식으로 달래서 겨우겨우 댁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림책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리 정신없는 날은 아마 처음인 듯합니다.
오전엔 의청과 오래 만나왔고 지난 시간에도 그림 작업을 함께 하셨던 김할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비보에 모두들 마음이 어려웠는데 어르신들이 돌발행동으로 우리 모두의 혼을 빼놓는 일들을 벌여주시니 이쯤이면 할머니께서 우리가 조금이나마 덜 슬퍼하게 이리 만들어 주신 건 아닌 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신없는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박유리(가정결연)
'봉천동나눔의집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남교회 GFS (0) | 2019.12.20 |
---|---|
후원자께 드리는 감사편지 (0) | 2019.12.20 |
마음의 창 (0) | 2019.12.20 |
재개발 일정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0) | 2019.08.29 |
그림책 읽어주는 마을 (0) | 2019.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