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글씨여? 내가 아는 게 아닌디? 아따 이것도 글씨네...허허...” 성경책 읽어보는 것이 소원인 이** 할머니는 “이 글씨는 뭐시당가 내가 아는 글씨가 아닌디... 나 한글 배우기도 벅차. 이것 못 배워”라고 하셔서 이것도 한글이라고 한참을 설득해야만 했습니다. 책 표지의 그림 글씨를 손으로 따라 써보는 어르신의 얼굴에 새로운 것을 접하는 어린아이의 얼굴 같은 미소가 번집니다.
연세대의료청년봉사단이 매달 2, 4주 토요일 봉천동 주변 어르신들의 말벗과 건강 체크, 한글 교실 수업을 위해 동네 어르신들을 방문합니다. 1년쯤 방문하다 보니 관계의 폭을 좁힐 이야깃거리가 좀 바닥났습니다. 그래서 올해 어르신들과 그림책을 만들어 볼까 하여 먼저 읽기 작업부터 들어갔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이라 말하기도 민망한 준비 단계지만 어르신들만의 자전적인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나눔의집과 결연 관계에 있는 어르신 대부분이 그림책과 친숙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한글도 깨치지 못한 분들도 계시지요. 당연히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능은 할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우선은 책 읽는 즐거움만이라도 어르신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으헉~ 그림책값이 얼마나 비싼지 일단은 몇 권을 사서 돌아가며 보기로 했습니다.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누군가가 날 위해 책 읽어 준 기억이 없어”라며 아이 같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고 이것만으로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방 한번 메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어릴 적 기억은 팔순이 넘은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갈망이었나 봅니다. 함께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조금은 그 갈증을 채우는 듯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은 추억이고 어르신의 옛 이야기를 더 깊이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김 할머니는 텃밭이야기가 있는 그림책을 보시고 어릴 때 집에서 심었던 나무며, 꽃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알사탕을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 그림책을 본 할머니도 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나온 눈깔사탕의 달콤한 추억은 그림책 속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해 또 다른 옛날이야기로 변해 학생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다음엔 또 다른 이야기를 읽어 줄 수 있냐는 어르신의 기대어린 질문에 어르신 만큼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새로운 이야기가 봉사자들에게도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어르신들에게도 또 학생들에게도 그리고 저희 나눔의집에게도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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