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온 어린 왕자를 우연히 만난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우리는 봉천9동 비탈길 중턱 산 101번지에 자리 잡은 한 건물과 관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사람과 건물, 서로가 서로를 길들여 온 지 근 삼십 년. 우리에게 나눔의집 공간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건축물을 일컬어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희로애락이 담긴 그릇. 나눔과 섬김, 희망과 좌절의 기억이 담긴 그릇. 그런데 올가을 그 건물이 헐립니다.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너무나 서운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이 다른 그릇에 우리 삶을 채워나가야 합니다. 서로를 길들이려면 또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껏 그래 왔듯 우리는 고마운 인연들로 인해 또 한고비 넘어갈 용기를 얻습니다. 적당한 새 그릇을 찾아 우리의 미래를 잘 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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